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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폴드를 넘어선 딥마인드의 신약 설계 엔진 — AI는 정말 제약의 판을 바꿀까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것과 실제로 팔리는 약을 만드는 것. 이 둘 사이에는 생각보다 깊은 골짜기가 있습니다. 딥마인드의 자회사 아이소모픽 랩스(Isomorphic Labs)는 지금 그 골짜기를 AI로 건너겠다고 나섰는데요. 알파폴드가 학계의 게임 체인저였다면, 이번 승부처는 훨씬 냉정한 시장, 바로 제약 산업입니다.

한 가지 먼저 짚고 갈 게 있습니다. 이 주제는 최근 한 달간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논의된 따끈한 이슈라기보다는, 업계가 조용히 주시하고 있는 장기 판돈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오늘 글은 실시간 반응 중계보다는, 왜 이 그림이 중요한지 그 구조를 뜯어보는 쪽에 무게를 두겠습니다.

알파폴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많은 분이 알파폴드를 신약 개발의 종착점처럼 오해하시는데요. 사실은 출발선에 가깝습니다.

알파폴드가 해준 건 단백질이 어떻게 접히는지를 예측한 겁니다. 우리 몸속 단백질은 3차원으로 접혀서 특정 모양을 갖는데, 이 모양을 알아야 어디를 공략할지 정할 수 있습니다. 과거엔 이 구조 하나 밝히는 데 수개월에서 수년, 그리고 막대한 실험 비용이 들었습니다. 알파폴드는 이걸 사실상 공짜에 가깝게, 순식간에 풀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냉정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표적의 모양을 안다고 약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 모양에 딱 맞게 끼워질 새로운 분자를 설계해야 하고, 그 분자가 몸에 안전한지,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대량 생산이 되는지까지 넘어야 할 관문이 산더미입니다. 알파폴드는 지도를 그려줬을 뿐, 그 길을 걸어가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인 셈입니다.

아이소모픽이 노리는 건 ‘설계’ 그 자체입니다

아이소모픽 랩스가 딥마인드에서 분사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구조 예측이라는 학술적 성취를 넘어, 돈이 되는 약을 직접 설계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겁니다.

핵심은 알파폴드3 계열의 기술입니다. 알파폴드2까지가 단백질 단독의 구조를 봤다면, 알파폴드3는 단백질과 약물 후보 분자가 어떻게 결합하는지까지 예측합니다. 신약 개발자 입장에서 이건 결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후보 물질 수백만 개를 실험실에서 하나씩 테스트하는 대신, 컴퓨터 안에서 먼저 걸러낼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전략도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다국적 제약사와 손잡고 그들의 파이프라인을 AI로 가속하는 것. 실제로 대형 제약사들과 수십억 달러 규모의 협업 계약을 맺으며 실탄을 확보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언젠가 자체 신약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손으로 만들어내는 것. 전자가 현금 흐름이라면, 후자가 진짜 야망입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증명’을 못 했을까요

여기서 회의론자들이 목소리를 냅니다. 그럴듯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임상시험이라는 벽입니다. AI가 아무리 좋은 후보 분자를 뽑아도, 결국 사람 몸에서 효과와 안전성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 임상 과정은 보통 수년이 걸리고, 여기서 대부분의 후보가 탈락합니다. AI로 앞단을 빨리 감는다고 이 뒷단까지 빨라지는 건 아닙니다. 약 하나가 시장에 나오기까지 10년 넘게 걸린다는 통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둘째, 데이터의 편식 문제입니다. AI는 학습한 데이터만큼만 똑똑합니다. 그런데 기존 신약 데이터는 이미 잘 연구된 표적에 쏠려 있습니다. 정작 약이 없어 아쉬운 난치병 표적은 데이터 자체가 부족합니다. 잘 아는 곳만 더 잘 알게 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셋째, 아직 임상 진입 실적이 눈에 띄게 쌓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화려한 발표와 대형 계약은 있지만, “AI가 설계해서 실제로 환자를 살린 약"이라는 결정적 한 방은 업계 전체에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이소모픽뿐 아니라 이 판에 뛰어든 모든 AI 신약 회사가 같은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과대광고와 진짜 변화, 그 사이 어디쯤

그렇다면 이건 또 하나의 거품일까요. 저는 조금 더 신중한 입장입니다.

분명한 건 탐색 단계의 비용과 시간이 실제로 줄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엔 유망한 후보를 찾는 데만 수년이 걸렸다면, 이제 그 앞단이 극적으로 압축됩니다. 이건 마케팅이 아니라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입니다. 신약 개발의 성공 확률 자체를 몇 퍼센트포인트만 끌어올려도, 산업 전체로 보면 수십조 원 규모의 가치가 움직입니다.

동시에 냉정해야 할 지점도 분명합니다. AI는 신약 개발을 빠르게 만들 수는 있어도, 임상이라는 근본적 불확실성을 없애주진 못합니다. “AI가 신약 개발을 대체한다"는 서사는 과장이고, “AI가 신약 개발의 앞단을 재편한다"는 서사가 현실에 가깝습니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게 옥석을 가리는 첫걸음입니다.

결국 아이소모픽 랩스가 진짜 판을 뒤집었는지는, 화려한 논문이 아니라 몇 년 뒤 임상 파이프라인에 이름을 올린 약들의 개수가 말해줄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AI가 설계한 첫 블록버스터 신약, 우리가 그 소식을 듣게 될 날은 생각보다 가까울까요, 아니면 아직 한참 먼 이야기일까요.

AI 신약개발 딥마인드 IsomorphicLabs 바이오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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