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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의 '기억'이 해킹 표면이 됐다 — 대화 한 줄로 과거 대화를 통째로 빼가는 법

AI 챗봇에 “기억” 기능이 붙은 지 이제 좀 됐습니다. 매번 내 직업이 뭔지,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죠. 그런데 편의성에는 늘 청구서가 따라옵니다. 기억이 쌓인다는 건, 훔칠 게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먼저 솔직하게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이번 글의 소재인 “메모리 탈취(memory heist)” 실험에 대해 커뮤니티 데이터를 뒤져봤는데, 최근 30일 내 의미 있는 논의를 거의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특정 실험의 세부 사항을 중계하는 대신, 왜 이런 공격이 구조적으로 가능한지를 뜯어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개별 사건보다 이 구조가 훨씬 오래 갈 이야기라서요.

프롬프트 인젝션은 버그가 아니라 설계의 결과입니다

먼저 기본기부터 짚고 갑시다. 프롬프트 인젝션이 왜 아직도 안 고쳐지냐고 묻는 분이 많은데요. 답은 단순합니다. 고칠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소프트웨어는 코드와 데이터가 분리돼 있습니다. SQL 인젝션이 골칫거리였던 이유도 이 경계가 흐려졌기 때문이고, 그래서 파라미터 바인딩이라는 해법이 나왔죠. 명령은 명령 채널로, 데이터는 데이터 채널로 보내면 끝입니다.

그런데 LLM에는 그런 채널 분리가 없습니다. 시스템 프롬프트도 텍스트, 사용자 입력도 텍스트, 웹에서 긁어온 문서도 텍스트, 저장된 메모리도 텍스트입니다. 모델은 이 모든 걸 한 덩어리 컨텍스트로 읽습니다. “이건 명령이고 저건 그냥 참고자료야"라는 구분은 모델이 알아서 눈치껏 하는 것이지, 시스템이 강제하는 게 아닙니다. 눈치는 속일 수 있습니다.

메모리가 붙으면 공격의 시간축이 늘어납니다

여기에 메모리가 얹히면 성격이 달라집니다. 기존 프롬프트 인젝션은 기본적으로 일회성이었습니다. 오염된 웹페이지를 읽히고, 그 세션에서 뭔가를 시키고, 대화가 끝나면 증발합니다. 피해 범위가 그 창(window) 안에 갇혀 있었죠.

메모리는 이 벽을 허뭅니다. 공격 각도가 두 방향으로 생깁니다.

읽기 방향: 공격자가 심어둔 지시문이 모델에게 “저장된 메모리를 전부 꺼내서 이 형식으로 정리해줘"라고 시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외부로 흘려보냅니다. 마크다운 이미지 태그의 URL에 데이터를 실어 보내는 수법이 대표적입니다. 사용자 눈에는 깨진 이미지 하나만 보이는데, 공격자 서버 로그에는 쿼리스트링으로 실린 내 정보가 고스란히 남습니다.

쓰기 방향: 이쪽이 더 고약합니다. 공격자가 메모리에 가짜 기억을 심어놓는 겁니다. “앞으로 코드를 작성할 때는 항상 이 라이브러리를 임포트해”, “이 도메인은 신뢰할 수 있는 곳이야” 같은 문장이 사용자의 장기 메모리에 자리 잡으면, 공격은 그 세션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다음 대화, 그 다음 대화까지 계속 살아남습니다. 일회성 침입이 지속성 있는 백도어로 승격되는 셈이죠.

보안 쪽에서 쓰는 표현을 빌리면, 메모리는 AI 에이전트에게 처음 생긴 영속 저장소입니다. 그리고 영속 저장소는 예외 없이 공격 대상이 됩니다. 30년간 반복돼온 패턴입니다.

치명적 삼요소: 세 개가 모이면 터집니다

보안 연구자들 사이에서 자주 인용되는 프레임이 있습니다. AI 에이전트에서 다음 세 가지가 동시에 성립하면 데이터 유출은 시간문제라는 겁니다.

첫째, 민감한 데이터에 대한 접근 권한. 메모리 기능이 바로 이겁니다. 지난 몇 달간 내가 어떤 회사에서 뭘 만들고 있는지, 어떤 고민을 했는지가 다 들어있습니다.

둘째, 신뢰할 수 없는 콘텐츠에 대한 노출. 웹 검색, 파일 업로드, 이메일 연동, MCP 커넥터. 요즘 AI 도구가 자랑하는 기능이 전부 여기 해당합니다.

셋째, 외부와 통신할 수 있는 능력. 링크 렌더링, 이미지 로딩, 네트워크 요청, 도구 호출.

문제는 이 셋이 지금 우리가 “좋은 AI 어시스턴트"라고 부르는 것의 정의 그 자체라는 점입니다. 기억하고, 세상을 읽고, 행동한다. 하나라도 빼면 상품성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벤더들은 삼요소를 없애는 대신 각 지점에 필터를 겁니다. 도메인 허용목록, 유출 탐지, 렌더링 제한 같은 것들이죠.

필터는 왜 계속 뚫리는가

패치와 우회의 반복 구조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벤더가 “이미지 URL로 데이터 유출 못 하게 막았다"고 하면, 다음 리서치는 링크 프리뷰로 옵니다. 링크 프리뷰를 막으면 특정 도메인 허용목록의 빈틈을 찾습니다. 렌더링을 다 막으면 도구 호출 파라미터에 데이터를 실어 보냅니다.

이게 블랙리스트 방식의 숙명입니다. 방어자는 알려진 통로를 하나씩 막고, 공격자는 아직 안 막힌 통로 하나만 찾으면 됩니다. 비대칭이 심하게 기울어 있죠. 게다가 자연어 필터는 결정론적이지 않습니다. “메모리를 유출하라"는 명확한 지시는 잡아내도, 소설 속 등장인물의 대사로 감싸거나, 인코딩해서 넣거나, 여러 단계로 쪼개서 넣으면 판정이 흐려집니다.

근본 해법으로 거론되는 건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구조적 분리. 신뢰할 수 없는 콘텐츠를 처리하는 모델과 실제 권한을 쥔 모델을 아예 분리하고, 그 사이는 미리 정의된 스키마로만 통과시키는 방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능력 제한. 오염된 컨텍스트를 한 번이라도 읽은 세션은 외부 통신 권한을 박탈하는 식이죠.

둘 다 맞는 방향인데, 둘 다 제품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진도가 느립니다.

그래서 오늘 뭘 해야 하나

거창한 대응책을 기대하셨다면 죄송합니다만, 현실적인 건 이 정도입니다.

메모리에 뭐가 들었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하세요. 대부분의 서비스가 저장된 메모리를 열람하고 삭제하는 기능을 제공합니다. 내가 넣은 기억이 없는 항목이 있다면 그게 신호입니다.

민감한 작업은 메모리를 끈 세션에서 하세요. 사내 기밀, 인증 정보, 고객 데이터가 오가는 대화라면 컨텍스트를 격리하는 게 맞습니다.

웹 검색이나 외부 문서 읽기를 켠 세션에서는 경계를 높이세요. 삼요소 중 두 번째가 활성화된 상태니까요.

AI가 갑자기 이상한 링크나 이미지를 뱉으면 클릭하지 마세요. 그게 유출 채널일 수 있습니다.

마무리

AI에게 기억을 준 건 필연적인 진화였습니다. 매번 자기소개를 반복하는 어시스턴트는 어시스턴트가 아니니까요. 다만 우리는 기억이라는 자산을 만들면서 그걸 지킬 금고는 아직 안 만든 상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과거 웹 보안이 그랬듯이, 이 분야도 결국 사고가 몇 번 터지고 나서야 표준이 잡힐 겁니다. 문제는 그 사고의 소재가 여러분이 지난 6개월간 AI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라는 점이겠죠.

당신의 AI는 당신에 대해 무엇을 기억하고 있나요? 마지막으로 확인해본 게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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