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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스탠퍼드 로스쿨 교수를 이겼다고? '법은 자동화 불가'라는 믿음에 금이 가는 순간

“의사는 몰라도 변호사는 AI가 대체 못 한다.” 한동안 이런 말이 정설처럼 통했는데요. 법은 맥락과 판단, 그리고 책임이 얽힌 영역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런데 “AI가 로스쿨 교수를 이겼다"는 도발적인 연구 결과가 다시 회자되면서, 이 믿음에 슬슬 금이 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주장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너무 앞서 나가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차분하게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솔직하게 말씀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이번 주제는 최근 30일 사이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논의된 따끈한 이슈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실시간 화제성보다는, 지난 몇 년간 쌓여온 흐름을 다시 정리하고 해석하는 데 무게를 두었다는 점을 미리 밝혀둡니다.

“이겼다"는 말의 진짜 의미부터 짚고 가야 합니다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건 해석의 과장입니다. “AI가 교수를 이겼다"는 헤드라인은 강렬하지만, 실제 연구들이 측정한 건 대부분 특정한 조건의 시험 점수입니다.

법학 분야에서 AI 성능 논쟁에 불을 붙인 대표적 사건은 미국 변호사 시험, 이른바 바 시험(Bar Exam) 통과 실험이었는데요. 대형 언어모델이 변호사 시험을 상위권 점수로 통과했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업계가 들썩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특정 법학 시험에서 AI의 답안이 익명 채점 환경에서 교수나 학생 답안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류의 비교 연구들이 이어졌습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이건 표준화된 시험 환경에서의 점수 비교입니다. 정해진 형식, 정해진 질문, 정해진 채점 기준이 있는 게임이라는 뜻인데요. 이런 환경은 사실 AI가 가장 강한 종목입니다. 방대한 판례와 법조문을 빠르게 인용하고 구조화된 답안을 뽑아내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교수를 이겼다"는 결과 자체는 놀랍지만, 곧바로 “변호사가 필요 없어졌다"로 번역하면 안 됩니다.

법조계가 진짜로 긴장하는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험 점수 하나로 호들갑이냐고 물으실 수 있는데요. 법률 분야 종사자들이 주목하는 건 점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점수가 가리키는 업무의 구조 변화입니다.

법률 일은 생각보다 반복적인 영역이 넓습니다. 계약서 검토, 판례 리서치, 문서 초안 작성, 디스커버리(증거개시) 단계의 대량 문서 분류 같은 일들이 그렇습니다. 이런 작업은 전통적으로 신입 변호사나 패럴리걸이 수백 시간씩 매달리던 부분이었는데요. AI가 시험에서 보여준 능력은 바로 이 영역을 정조준합니다.

테드(TED) 무대에서도 이 주제는 꾸준히 다뤄졌습니다. 2023년 한 강연자는 “AI가 만드는 정의(justice)“라는 주제로 법률 접근성 문제를 짚었는데요. 3만 회 넘게 조회되며 적지 않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요지는 단순합니다. 변호사 비용이 너무 비싸서 법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AI가 그 문턱을 낮출 수 있다는 겁니다. 위협론과 기대론이 동시에 존재하는 셈인데요. 누군가에겐 일자리 위협이고, 누군가에겐 그동안 법률 서비스에서 소외됐던 사람들을 위한 기회입니다.

그런데 ‘못 하는 것’의 목록도 분명합니다

여기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AI가 시험을 잘 본다는 것과, 실제 법률 실무를 책임진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환각(hallucination) 문제입니다. AI가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사고는 이미 여러 차례 현실에서 터졌습니다. 미국에서는 변호사가 AI가 만들어낸 가짜 판례를 법원에 제출했다가 제재를 받은 사례가 반복적으로 보도됐는데요. 시험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한 건의 오류가 의뢰인의 인생을 좌우하는 실무에서는 치명적입니다.

둘째, 책임의 문제입니다. 법률 자문이 틀렸을 때 누가 책임지느냐는 질문에 AI는 답할 수 없습니다. 변호사라는 직업의 본질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판단에 면허와 책임을 거는 데 있습니다.

셋째, 스탠퍼드 로스쿨이 일찍부터 다뤄온 차별과 편향 문제입니다. 2019년 스탠퍼드의 AI·법학 관련 심포지엄에서는 이미 AI가 가진 차별 가능성을 정면으로 논의했는데요. 학습 데이터에 담긴 편향이 판결이나 자문에 그대로 스며들 수 있다는 우려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법학 교육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신호

어쩌면 이번 연구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변호사 대체론이 아니라 교육의 변화일지도 모릅니다.

AI가 시험을 잘 본다는 건, 역설적으로 기존 법학 시험이 측정하던 능력의 상당 부분을 기계가 대신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로스쿨은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판례 암기와 답안 작성 기술이 아니라, AI가 뽑아낸 결과를 검증하고 의심하는 능력, 윤리적 판단, 의뢰인과의 소통 같은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야 한다는 논의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해외 법학 교육 현장에서는 이미 ‘AI와 법’을 별도 과목으로 다루는 온라인 강좌(MOOC)들이 등장했습니다. 미래의 변호사에게 AI는 적이 아니라 반드시 다뤄야 할 도구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인데요. 이 흐름은 우리나라 법학 교육에도 머지않아 닥칠 질문입니다.

결국 “AI가 교수를 이겼다"는 문장은 결승선이 아니라 출발 신호에 가깝습니다. 법이 자동화되지 않는다는 믿음은 절반만 맞았습니다. 반복적이고 구조화된 부분은 빠르게 자동화되겠지만, 책임과 판단이라는 핵심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가요. 만약 법률 상담의 첫 단계를 AI가 맡는다면, 그 결과를 어디까지 믿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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