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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이 오래된 킨들의 문을 닫는다 — 내가 산 전자책은 정말 내 것이었나

책장에 꽂힌 종이책은 10년이 지나도 내 것입니다. 그런데 10년 전에 산 킨들 속 전자책은 어떨까요. 아마존이 최근 오래된 킨들 모델의 지원을 끊겠다고 발표하면서, 사용자들 사이에서 익숙하지만 늘 외면해온 질문이 다시 터져 나왔습니다. “내가 돈 주고 산 책은 누구의 것인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이번에 영향을 받는 건 초기형 킨들 모델들입니다. 아마존은 일부 구형 기기에서 신간 다운로드, 동기화, 스토어 접속 같은 핵심 기능을 단계적으로 종료한다고 안내했습니다. 기기 자체가 망가진 게 아닙니다. 배터리도 멀쩡하고, 화면도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책장 동기화가 멈추고, 새 책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YouTube에서는 “Amazon Just Killed Old Kindles And Users Are Furious” 같은 제목의 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사용자들의 분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멀쩡한 하드웨어가 회사의 결정 하나로 사실상 종이 무게추가 되는 경험. 이걸 두고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라는 단어가 다시 소환되는 중입니다.

“구매” 버튼의 진짜 의미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우리가 킨들 스토어에서 누르는 그 “구매” 버튼은, 법적으로는 책을 사는 행위가 아닙니다. 정확히는 “제한된 사용권 라이선스(limited license)"를 빌리는 것에 가깝습니다. 약관을 들여다보면, 아마존은 언제든 특정 콘텐츠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거나 회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2009년, 아마존은 사용자들의 킨들에서 조지 오웰의 『1984』를 원격으로 삭제한 적이 있습니다. 하필이면 그 책이 『1984』였다는 점이 두고두고 회자됐죠. 디지털 소유권의 본질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왜 지금 다시 논란인가

기기 지원 종료는 사실 IT 업계에서 흔한 일입니다. 애플도, 구글도 합니다. 그런데 킨들이 유독 논란이 되는 이유는, 이 기기가 “책”이라는 매개체이기 때문입니다.

종이책 출판 산업이 수백 년간 만들어온 암묵적 약속이 있습니다. “한번 산 책은 내 평생의 자산"이라는 약속이요. 전자책은 이 약속을 슬그머니 라이선스 모델로 바꿔놨고, 평소엔 아무도 그 차이를 체감하지 못합니다. 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기기 지원 종료 같은 이벤트가 터지면, 그 차이가 한꺼번에 드러납니다.

사용자가 할 수 있는 것

현실적으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몇 가지입니다. 첫째, DRM 해제 도구를 이용해 구매한 책을 백업하는 방법. 다만 이건 약관 위반 소지가 있고, 국가별로 법적 회색지대입니다. 둘째, DRM-free 전자책을 판매하는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 셋째, 정말 중요한 책은 종이로 사는 것.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디지털 소유권”을 둘러싼 제도가 바뀌는 겁니다. EU에서는 디지털 콘텐츠의 영구 보존권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고, 일부 국가에서는 “구매” 버튼의 문구를 “라이선스 취득"으로 표시하도록 요구하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킨들 사건은 단순한 가전제품 단종 이슈가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누르는 “구매” 버튼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클라우드 시대의 소유권이 얼마나 허약한 약속 위에 서 있는지를 다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여러분의 디지털 책장에는 몇 권의 책이 있나요. 그리고 그중 몇 권을, 아마존이나 애플이 망해도 계속 읽을 수 있다고 확신하시나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지금 책을 사고 있는 게 아니라 빌리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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